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문단 편집) === 악의 평범성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악의 평범성)] >이따금 희극은 갑자기 공포 그 자체로 되어 버리기도 하고, 그래서 그 결과 섬뜩한 유머가 그 어떤 초현실주의적 창작물을 능가하는, 그러나 진실된 이야기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한 이야기를 아이히만이 경찰 심문 중에서 털어놓았는데, 이는 유대인 공동체의 대표 중 하나였던 빈의 불행한 상업고문관 스토르퍼의 이야기였다. 아이히만은 아우슈비츠의 사령관 [[루돌프 회스]]로부터 전보를 받았는데, 스토르퍼가 도착하여 급히 아이히만을 만나자고 청했다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좋아, 이 사람은 언제나 태도가 좋았기 때문에 내가 약간의 시간을 쓸 가치가 있지. ⋯⋯나는 직접 거기 가서 그의 문제가 뭔지 알아봐야겠어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나는 에브너[* 빈의 게슈타포 우두머리]에게 갔는데, 에브너가 말하기를 (나는 어렴풋이밖에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그렇게 서투르지만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는 숨어서 도망치려고 했지'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경찰은 그를 체포해서 수용소로 보냈고, 제국지휘관(힘러)의 명령에 따라 한 번 들어가면 아무도 나올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일도 가능하지 않았지요. 여기에 대해 에브너 박사나 나, 그리고 그 누구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나는 아우슈비츠로 가서 회스에게 스토르퍼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회스가 말하기를) 그래, 그래. 그는 노동조 중 하나에 속해 있어.' 나중에 스토르퍼와 만났는데, 그 만남은 정상적이고 인간적이었어요. 우리는 정상적이고 인간적인 만남을 가졌지요. 그는 모든 슬픔과 비애를 내게 털어 놓았습니다. 저는 '그래, 내 사랑하는 오랜 친구야, 확실히, 우리는 이제 확실히 알았어요! 얼마나 운이 나빴던가를!'이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나는, '이봐요, 저는 정말 당신을 도와줄 수 없어요. 왜냐하면 제국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아무도 나올 수 없게 되어 있으니까요. 저는 당신을 빼낼 수 없어요. 에브너 박사도 당신을 빼낼 수 없습니다. 저는 당신이 실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숨어서 도망치려고 했잖아요. 사실 당신은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라고 말했어요. (아이히만의 말은 스토르퍼가 유대인 지도층 인사였기 때문에 추방에서 면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 그가 뭐라고 답했는지는 잊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상태가 어떤지 물어봤지요. 그러자 그는 작업에서 면제될 수 없는지 물어왔어요. 일이 아주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회스에게 '스토르퍼가 꼭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잖아!'라고 말했습니다. 회스는 '여기선 모두가 다 일을 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나는 '좋아, 내가 짧은 편지를 써서 스토르퍼가 빗자루로 자갈포장로를 쓰는 일을 하도록 하겠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거기에는 자갈포장로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는 빗자루를 놓고 벤치에 앉아 쉴 수 있을 거야.' 스토르퍼에게 나는 말했습니다. '이 정도면 될까요, 스토르퍼 씨? 그 일이 당신에게 맞을까요?' 이 일에 대해 그는 매우 기뻐했고, 우리는 악수했습니다. 그에게는 빗자루가 주어졌고, 벤치에 앉았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일한 사람을 마침내 만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큰 내적 기쁨을 주었지요." 이 정상적이고 인간적인 만남이 있은 지 6주일 후 스토르퍼는 죽었다. 가스가 아니라 총살이었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 p.107~109] 아이히만이 직접 말한 위의 일화에서, 아이히만은 스토르퍼와의 만남을 '''정상적이고 인간적인 만남'''으로 회상하고 있다. 심지어 아이히만은 오랫동안 함께 일한 동료를 만나고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그 만남에서 '''큰 내적 기쁨'''을 느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상대방인 스토르퍼는 과연 그 만남을 "정상적이고 인간적인 만남"으로 느꼈을까? 아렌트는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상투어'''(Klischee)가 아이히만의 현실감각을 왜곡시켰다고 본다. [[아돌프 히틀러|히틀러]]나 [[파울 요제프 괴벨스|괴벨스]]가 만든 구호가 사람들의 현실성을 왜곡시켜 나치 체제의 거짓말을 효과적으로 숨겼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관된 이데올로기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해마다 변하는 거짓말로서 종종 서로 '''모순'''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들이 상황에 따라 모순되는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을 완화시켜줄 적절한 "상투어"가 생각나기만 한다면 그들은 곧 "의기양양"해 질 수 있었다. 그러한 점은, 아이히만이 붙잡힌 후 계속해서 "'''나는 과거의 적들과 화해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이게 당당하게 '화해'할 문제인가? 이 터무니없는 상투어는 더 이상 [[나치|위에서]] 내려온 것이 없을 때에도 자기 변명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당시 수많은 독일인들이 자신의 입장을 표현할 때 "이제 화해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재판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아이히만은 처음에 자신이 젊은 시절에 배운 단 한가지는 "맹세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대단히 강조하고는 선서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그 후에 판사로부터 자신의 변호를 위한 증언을 하고 싶으면 선서를 한 뒤 할 수도 있고 선서 없이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두말 않고 즉시 선서 아래에서 증언을 하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모순' 따위는 한 번도 의식하지 않은 채 아주 만족스러워할 수 있었다. 그가 기억 속에서나 즉흥적으로나 자신의 기분을 북돋울 수 있는 상투어들을 찾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사형집행의 순간에도 상투어로 자신을 위로하는 이 끔찍한 재능을 발휘했다. 죽기 전, 그는 "신을 믿는 자"[* 특정 종파에 속하지 않지만 신은 형식상 믿는 나치스 식 상투어(관용어).]라고 분명히 진술하면서 자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며 죽음 이후의 삶을 믿지 않는다는 점을 일반적인 나치스 식으로 표현했다. 그러고는 그는 "잠시 후면,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는 당시 장례식에서 자주 쓰였던 상투어(관용어)였다.]고 말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 냈고, 곧 의기양양해졌다. 그는 이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사악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 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 p.349]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